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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봉사활동

캄보디아 의료봉사 2차 / 최원원장

작년 연말 캄보디아에 1년동안 안식년으로 가 있던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캄보디아를 특별하게 사랑하게 된 그 친구는 초등학교부터 같은 교회를 다닌 오래된 친구인데 사실 친구라기보단 언제나 나보다 앞선 언니같고 선생님같읕 존재였다.

 

원아 잘지내니?

나는 이곳에서 쓰레기 매립장 주변의 도시 빈민 사역을 하시는 예수 전도단 김준 선교사님을 돕고 있어,,,그런데 그곳에 정기적인 치과진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 치과용 의료장비는 이곳에서 빌리고 의사선생님들은 와서 2일 정도만 진료하면 좋을 것 같아. 왜냐면 매립장 주변의 주민이 약 이백명 정도 되는데 그분들만 대상으로 하니까 정기적으로 일년에 두 번 정도 방문해주면 하는데 혹시 이일에 부르심이 있는지 기도해보고 주변의 치과선생님께도 물어봐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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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모든일 이 결코 우연은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 카톡을 바로 씹지 않고 주님께 여쭙고 기다렸다.이 무시무시한 일을 제가 받아야하는지,,,동남아 에 전혀 관심이 없을뿐아니라 한번도 해외 진료 봉사를 해본적도,실은 시간도 재정도 그닦 여유롭지 않기에,,,,실은 대학교때 고백을 하자면,,, 먼저 그분이 제마음안에 주신것인데 세계를 섬기는 일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약속을 위해 수련프로그램을 받기까지 했다.

 

 

그러다 결혼이란 어두운 터널을 지나며 의료선교는 이미 나의 능력 밖이 되었고 난 하루살이 인생처럼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내고 있기에 이미 포기해버린, 아니, 나의 몫이 아닌 그분의 몫으로 던져져 있었다. 12월 의 마지막 날 한해를 마무리하며 2016년의 첫 시간,,을 맞이하는데 선교라는 단어를 강력하게 기도중에 듣게 하셨다.드뎌시작이구나...그렇게 시작된 캄보디아 한걸음은 . 분당 웃는 하루 치과 선생님들을 시작으로 사랑의 치과 선생님들과 우리치과 선생님들이 연합하여 시작되었다.함께 동행한 아름다운 선생님들의 모습이다.

 

특별히 분당 웃는 하루 치과와 우리 치과 선생님과 그 가족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5월 중순. 소중한 황금연휴를 반납하고 캄보디아 에 도착하였다. 프놈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후끈거리는 동남아 특유의 열기속에 따스한 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에 조용히 느껴졌다..이동하는 버스안 친구를 통해 캄의 역사적 배경을 들으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캄보디아의 크메르족은 앙코르 시대 (9-14세기)에 현재의 캄보디아 영토 뿐만아니라 베트남, 라오스, 태국까지 지배했던 강력한 크메르 제국 (Khmer Empire)의 계승자이며.

 

그들의 조상은1세기 남인도에서 이주해왔으며 크메르는 A.D.10세기까지 전체 인도차이나 반도를 지배할 만큼 고도로 정교한 문화를 발전시키기도 했다.그러나 특히 크메르 루즈 (Khmer Rouge)4년 통치 기간 중에는 (1975-1979) 대량학살이 자행되어 7백만 캄보디아 인구 중 약 2백만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혁명 이전에 존재했던 캄보디아의 문화가 완전히 파괴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들은 20년 이상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관계로 경제가 파탄지경이 되고,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빈곤한 나라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런 무식한 워니,,,역사적인 지식도 없이 그냥 달려온 부끄러운 첫걸음,,, 이틀동안 쓰레기 구매립장주변의 주민들을 진료하고 일요일 저녁 공항 으로 출발 하는 타이트한 일정을 지내며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행복하였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사랑의 치과에서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함께 하지 못한 다른 선생님들과 이 특별한 여정을 나누고 싶고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가져야하는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였다.사랑의 치과가 이부분을 함께 해야하는지 고민하기위해선 함께 그 땅을 가보고 싶었다.세분의 원장 선생님들에 의해 봉사활동은 순식간에 결정되고 행동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처음으로 병원을 약 5알간 닫고 전체 병원 자체경비로 이 일을 결정하는데 모두가 일치되 의견을 바로 출발을 결정하였다.

 

캄보디아땅의 현지 상황은 우리가 기존에 매스컴을 통해 어려움을 보아왔던 것보다 더도 덜도 아닌 심각한 상황을 절감하였다. 쓰레기 매립장에서 악취와 공해가 진동하는 곳에 굴속같은 집을 짓고 생활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더욱이 아이들은 중금속으로 오염된 물이 흐르는 곳에서 소꿉놀이를 하는 모습과 쓰레기더미에서 주워모은 밥을 부식된 철판위에 말리고 그 위에 수많은 파리떼가 달라붙어있는 모습을 보면서 또한 저들의 열악한 상황을 재확인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오염된 환경에서도 우리에게 환한 미소를 보내는 저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 모두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린 너무 많은 것을 갖고 있음에도 불평불만으로 가득찬 행동들을 해왔음을 모두가 돌아보게 되었다.

우린 15명의 스텝으로 구성되어 현지에서 통역과 현지 선교사님들의 헌신적인 지원아래 진료를 시작하였다. 보존, 진료, 스켈링, 소독팀 이렇게 팀을 나누어 진료를 시작하였는데, 2개월간 준비를 하기는 했지만 얼마나 조직적으로 헌신적으로 했는지 서로과 놀라웠다. 모두 힘든 상황에서 누구 한사람 짜증내지 않고 서로를 격려하며 이 짧은 기간에 한명이라도 더 진료를 해야겠다는 욕심이 모두의 마음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진료하였는지 조차,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조차 모를 정도 진료에 집중하였다. 우리 모두는 서로의 떨어지는 귀한 땀방울을 경험하며 최고의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진료를 하면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발치를 하고나면 더 이상 뭔가를 해줄수 없다는 현실이었다. 맹출된 치아상태에서 우린 그냥 떠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참 미안함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안타깝게 하였다.

우리가 많은 일을 할수 없지만 한가지는 할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린 많은 사람을 품을 수는 없지만 한사람은 내가 품을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한사람씩 품을 때 이 캄보디아 땅을 우리가 모두 품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떠나왔다.